벌레와의 전쟁
"어때!!! 런던 가니까 좋아??"
"완전. 근데 벌레가 너무 무서워..."
나는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한다. (세계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벌레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혼자 가는 건 일단 포기했을 정도) 한국에서는 날파리 한 마리도 혼자 못 잡을 정도였다. 모기가 방에 들어오면 거실에 나가서 자고, 귀뚜라미를 발견한 밤에는 엉엉 울었다. 게다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모기가 한 번 물면 근처 4~5군데가 부어오른다.
이번 포스팅은, 방충망 따위 없이 쿨하게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벌레와의 전쟁 이야기.
창문이나 벽에 까만 점이 있으면 일단 무섭다. 사진은 조금 전 왔다가 간 묻앙벌레.
[지금까지 처리한 벌레]
- 날팔이, 목이, 갬이, 진에, 묻앙벌레, 검이 (벌레 이름 글자만 봐도 징그럽고 무서워서... 개미가 아니라 갬이다)
- 진에는 벽과 바닥 틈 사이로 들어갔을 때 그 틈을 휴지뭉치로 똘똘 막아버렸고,
- 묻앙벌레는 제발 창문 밖으로 나가달라고 열심히 설득하면서, 종이 같은 걸로 살살 밀어서 (?) 내보냄.
- 검이는 옆 방에 Airbnb 로 잠시 묵었던 브라질 여자 아이가 도와줬다. 새벽 1시에 복도에 나와서 덜덜 떨고 있으니 무슨 일이냐 그래서 제발 날 좀 살려 달라고 했고, Is it really big?? 이라고 묻길래 새끼손톱을 보여 주었다. 브라질 친구는 아 뭐야 ㅋㅋㅋㅋ 라면서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주 쿨하게, 쪼리로 검이를 내리쳤다. RIP.. 사체를 찾을 수 없어 무서웠지만 아무래도 쪼리에 붙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확실히 때려 잡길래 안심하고 잤다.
[나의 무기]
- 신문지 : 집으로 오는 길, 지하철 입구에서 꼭 챙긴다.
- 잡지 : 마켓 같은 곳에 가면 월간지가 있다. 반질반질 도톰한 게 아주 유용함.
- 에프킬라 : 집 구하자마자 이불커버와 함께 가장 먼저 산 것 중 하나.
- 파리채 : Flying tiger 매장에 가니 기타 모양 파리채가 있었다! 무서워서 실제로 쓰지는 못하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아이템 중 하나.
- 방충망 : Amazon 에서 거의 2만원을 주고 구입. 셀프로 시공했다. 방충망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벌레가 들어올까봐 무서워서 밤에는 창문을 꽁꽁 닫고 잤는데, 숨이 막혀 곧 죽을 것 같았다. 삶의 질을 가장 많이 높여준 아이템.
[방충망 재시공 사건]
19th July.
Sainsbury's, Tesco, Waitrose. 근처 마트를 돌면서 "Fly Screen Net"을 파냐고 물었다. 다들 읭??? 한 표정으로 음... 그건 정말 specific needs 라며 고개를 저었다.
20th July.
아마존에서 가장 튼튼해보이는 Fly Screen Net 을 주문했다. 다이소에서 사면 2-3,000원 일 것 같은데 거의 2만원이다. 그래도 밤에 창문을 열고 싶다.
23th July.
방충망을 기다리며, 누워서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방 창문은 밖으로 밀어서 여는 창문인데, 문고리가 안쪽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접착식 방충망을 설치하면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가 없다는 걸.
25th July.
방충망이 도착했다! 런던에서 받는 첫 택배이자 나를 구원해줄 Fly Screen Net! 일단 설치했다. 문, 안닫지뭐... 벌레는 무서우니까.
26th July.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나도 밤에 창문 연다!!!
28th July.
런던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너무 너무 춥다. 늦가을만큼 춥다. 그런데 창문을 닫는 순간 방충망은 찢어진다... 그냥 잤다. 벌레는 무서우니까. 감기 걸리면 나으면 되지.
29th July.
아침인데도 너무 너무 추웠다. 큰일이다 싶어서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방충망을 더 크게 오렸다. 문고리가 들어와도 방충망이 안 찢어지도록 여유있게 붙이고, 뜨는 부분은 꾸깃꾸깃 잘 접어서 벌레가 들어올 틈을 막았다.
2018년 7월 29일부터 나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벌레도 없다. Home, Sweet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