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웬 요란한 옷을 입은 여자가 내 옆에 앉더니 스태프들이 여자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쇼핑몰 모델인가? 누가 저런 옷을 사지?)
모델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내가 비켜주려고 했더니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고 좋았는데, 괜찮으면 옆에 좀 앉아 있어달라고 했다. 어색하지만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비디오 촬영을 끝내더니, 한 스태프가 말을 걸었다. Love Island 라는 유명한 TV쇼에서 하는 Fabulous Magazine 에서 나왔다며, 인터뷰를 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Love Island 에서 나온 셀럽들처럼 차려입고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의 반응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음. 영어 인터뷰라니)
조금 당황했지만 흥미로웠다. 인터뷰 클립이 별로면 안 쓰고 말겠지. 그리고 혹시 내 영상을 쓴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어설픈 인터뷰 영상을 보고 연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긴 영국이니까! 한국에서는 인터뷰를 요청하면 거절하는데, 이번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터뷰에 응했다.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다.
알록달록 폼폼(pompom)이가 달린 브라탑을 입고 있는 그녀가 러블리하다고. 그런데 평소에 입을 만한 복장은 아닌 것 같으며, 한국에서도 바닷가나 페스티벌에 갈 때에나 이렇게 화려하게 입는다고 이야기한 부분이 영상에 올라갔다. (진짜 썼네..)
인터뷰에 응하기 전까지, 영어에 대한 부담이 꽤 있었다. 뭔가 대단한 말을, 유창하게 해야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스태프와 이야기(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냥, 쉬운 말로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되는 거였다. (스태프도 You can just say, I love her clothes! or I hate her clothes! It's easy! 라며 편하게 말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로 첫 영어 수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수많은 밑줄, 그리고 별표와 함께 점점 더 "최대한 어렵게 말하는 법"을 배운다.
I think she's so lovely! 라는 간단한 한 마디가.. 문법 시간이 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나에게 영어는 필기, 암기, 평가와 비교의 대상이었다. 좋아하는 노래에서 영어 가사가 들릴 때, 좋아하는 영화에서 영어 대사가 들릴 때면 너무나도 반갑고 즐거웠지만, 막상 말을 하려고 하면 누군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듯 얼어버렸다. 머릿속에서 '바르고 완벽한 문장'으로 번역을 하다가 '어, 영어로 이걸 뭐라고 하더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멈춰버리는 거다. 단어 하나만 몰라도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이러한 경험들이 반복되다 보면 '나는 스피킹이 잘 안 돼'와 같은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터뷰가 끝나고 버스에 올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어 못 하잖아. 모국어처럼 잘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부끄러워하고 있지? 지금까지 내가 영어를, 중국어를, 스페인어를 즐겁게 공부했던 시간들은 모두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노래 가사를, 영화 대사를, 외국인 친구의 수다를 알아 듣고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언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듣고, 말하는 것은 즐거워야 한다.
영어를 마스터해야지! 같은 부담감을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즐기기로 했다.